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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강따라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흐르는 비단강숲마을
천태산
  • 유형 : 관광지
  • 위치 : 충북 영동군 양산면
  • 전화 : 영동군청 문화체육과 043 - 740 - 3201 ~ 6

천태산은 고려시대 천태종의 본산이었기 때문에 산 이름도 ‘천태’가 된 영동의 명산으로 ‘충북의 설악’이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빼어나다.뛰어난 자연경관과 잘 정리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이름난 명소가 산재해 있어 등산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여름철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기암과 각종 수목의 푸름과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천년사찰인 영국사(寧國寺)가 자리 잡고 천년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배여 있다.

천태산

전해오는이야기

천태산 영국사와 공민왕

영동에서 양산 쪽으로 악20km 나가면 양산면 서북쪽 지점에 영국사(寧國寺)라는 오래된 절이 있는데 이절에는 고려조의 공민왕의 발자취가 서리어 있다. 서기 1361년(공민왕 10년) 11월 원(元)나라의 한산동(漢山童)을 두목으로 하여 일어났던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기 위해 공민왕은 노국(魯國)의 공주와 대신들을 데리고 피난의 길을 떠났다. 남으로 길을 재촉하던 공민왕은 영동 양산면 지금의 누교리(縷矯里)에 머물게 되었다. 영국사의 그 당시 이름은 국청사(國淸寺)이기 때문에 왕이 부처님 앞에 나가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평안을 빌려고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내린 폭우로 도무지 내를 건너 갈 수가 없었다. 개경(開京)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가슴 아픈 일들 뿐이었다. 성 안의 부녀자와 노인과 어린이들은 다투어 성을 빠져나갔다지만 그나마 피난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홍건적의 무리에 짓밟혀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킨다는 소식이었다.

공민왕이 이곳 양산이 아니라 이천(利川)을 지날 때 이미 홍건적은 개경(開京)을 함락 했고 그 뒤 수개월 동안 사람과 가축을 살해하고 왕궁을 불사르는 등 잔악한 행동이 그칠 사이가 없이 일어났다고 한다. 때마침 개울 건너 천태산(天台山) 쪽에서 종소리가 울려 왔다. 공민왕은 깜짝 놀라 좌우를 돌아보았다. 「이 부근에 절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종소리가 아름다운 절 인줄은 몰랐구나!」 왕비와 왕자 그리고 대신들은 하나같이 공민왕의 눈치만을 살폈다. 대신 한 사람이 설명하기를 「저 절은 일찍이 신라 때 원각국사(圓覺國師)께서 세운 절로써 처음에는 만월사(滿月寺)라 하였다가 문종대왕(文宗大王)당시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주지로 온 뒤로 국청사(國淸寺)라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옵니다.」 하고 아뢰었다. 공민왕은 눈이 번쩍 띄었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문종(文宗)의 아들로 천태종(天台宗)을 일으킨 분이 아닌가! 의천(義天)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저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나라와 백성이 평안함)을 빌어보고 싶었다. 공민왕의 뜻을 알아 차린 대신들은 산에 올라 칡넝쿨을 걷어 오라 일렀다. 그들은 수행원과 인근 마을 주민들이 걷어 온 칡넝쿨을 새끼줄처럼 꼬아서 이를 테면 구름다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공민왕은 완성된 다리를 밟고 국청사 부처님 앞에 나아갔다. 왕비 왕자 그리고 대신을 데리고 공민왕은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 그래서 국청사는 공민왕이 다녀간 뒤 왕이 나라 안 백성들의 편안함을 빌었다하여 편안할 영(寧)자 나라 국(國)자를 써서 (寧國寺)로 고쳐 부르기 시작 하였으며 공민왕이 칡넝쿨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간 마을을 누교리(樓橋里)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